2026년 4월 6일 월요일

나홀로 러닝

"나갈까, 말까." 토요일 새벽 5 . 눈을 뜨자마자 시작된 고민은 무려 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6시가 되자마자 9월에 있을 100마일 트레일 러닝 연습을 위해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남편 이상무를 배웅하고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조금 침대 온기를 즐겼겠지만, 왠지 오늘은 달랐습니다. 세수를 하면 정신이 들까봐 세수도 생략한 선크림만 대충 바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것도 '혼자' 뛰겠다고 마음을 먹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막상 현관문을 열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매니, 신기하게도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엔 그저 무심히 걷던 길들이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옵니다. 켄달 드라이브(Kendall Dr)에서 레드 로드(Red Rd), 그리고 올드 커들러 로드(Old Cutler Rd) 이어지는 .

부상을 방지하려고 '15 뛰고, 잠시 쉬고' 반복하며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갔습니다. 104번가까지 달려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파인크레스트(Pinecrest) 초등학교를 지날 때쯤엔 추억이 스쳤고, 다리 위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아침 캐널(Canal) 바라볼 때는 비로소 나오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50분쯤 지났을까요? 욕심이 과했는지 무릎 뒤쪽이 당기며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역시 라며 자책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쿨하게 뛰기를 멈추고 천천히 걷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평소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길가를 한가롭게 거니는 공작새 보조를 맞춰 걷다 사진도 찍어주었고요. 남의 마당에 벌써 열린 망고 열매 보며 , 이제 6, 망고의 계절이 오겠구나 설레기도 했습니다. (사실 더운 마이애미에서 버틸 있는 이유의 8할은 달콤한 망고 때문 아닐까요? ) 마을 한켠에 통나무로 지어지는 자연 친화적인 작은 공원 공사 현장을 보며, 완성된 후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가장 마음이 따뜻해졌던 순간은 자전거 양쪽 손잡이에 아침 식사를 소중히 걸고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시던 할아버지와 마주쳤을 때입니다.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할머니를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라고요.


집이 가까워질수록 체력은 있는데 무릎이 아파서 뛰는 상황이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토요일 이른 새벽, 침대의 유혹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긴 자신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남편의 100마일 트레일 레이스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가 내디딘 첫걸음도 그에 못지않게 값진 기록이니까요.

무릎이 조금 가라앉으면 나가보려 합니다. 다음번엔 망고가 조금 익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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