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기념일이나 생일, 심지어 아이들 생일에도 꼭 꽃다발이나 작은 화분을 사 들고 오는 남편 덕분(?)입니다. 정성껏 키워 베란다 한쪽에 자리를 잡아준 아이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 손에서 금방 시들어버린 아이들도 꽤 됩니다. 행사가 많은5월, 오늘은 그 중 하나인 결혼 기념일입니다. 이미 초록으로 꽉 찬 베란다를 보며, 이번엔 절대 꽃 사 오지 마라고 남편에게 엄포를 놓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경쾌하게 울립니다.
“깨톡!”
아들에게서 온 메시지입니다. Fogo de chao, 2명 예약, 예약자 Lee GH
세상에, 아들이 우리 부부를 위해 식당을 예약해 둔 것입니다. 사실 퇴근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큰 일처럼 느껴지지만, 아들 녀석이 직접 운전까지 해서 데려다주겠다니 기꺼이 길을 나섭니다.
우리가
간 곳은
포고 데
차오 (Fogo de Chão). 1979년에 시작된
유명한 브라질식
스테이크하우스입니다. 가우초’라 불리는
셰프들이 고기
꼬치를 들고
다니며 즉석에서
썰어주는 로디지우
스타일의 식당인데,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처음
와본 곳이라
조금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아서, 무제한(All
you can eat) 코스를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샐러드
바에 갔는데, 이런. 처음
집어 든
접시에 소스가
묻어 있습니다. 매니저에게 말하고
다른 접시를
들었지만 그것도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20점!을 외치며
겨우 깨끗한
접시를 찾아
샐러드를 담아왔습니다.
하지만
고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불만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치킨 베이컨, 비프스테이크, 양갈비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메쉬 포테이토와
튀긴 유카, 와인에 절인
달콤한 플랜테인까지… 테이블 위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축제입니다.
재미있는
건 테이블
위에 있는
작은 디스크, 초록색은
계속 주세요, 빨간색은 잠시
중지라는 뜻인데, 우리가 빨간색으로
뒤집어 놓아도
서버들은 자꾸만
고기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잘
먹게 생겼나? 싶어 남편과
마주 보며
웃음이 터졌습니다.
배가
터질 듯
불러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싶을
때쯤 계산서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가져온
계산서에는 이미
아들의 카드가
꽂혀 있었습니다.
아… 이 녀석, 식당 예약만
한 게
아니라 계산까지
미리 해둔
거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서프라이즈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어느새
이렇게 커서
엄마 아빠의
기념일까지 챙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을까.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눈시울이 살짝
붉어집니다.
기분
좋은 배부름을
안고 집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워낙
말수가 적은
남편이지만, 5월치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결혼한
지도 벌써 33년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33년어치만큼
늙었고, 또 33년어치만큼 함께
성장했습니다. 꽃보다
더 진한
향기를 남긴
아들의 선물
덕분에, 올해
결혼기념일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들아,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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